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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를 하는 함양 출신들은 생가보다 상림을 더 그리워한다.
신록이 빛나는 오월과 단풍이 형형색색 물드는 만추에도 아름답지만 낙엽이 흩날리는 이맘때의 상림은 옛 사랑을 떠올리게 해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논개의 묘소를 찾아 가슴 저미도록 안타까운 사연도 들어봤다. 최근에는 지리산으로 가는 오도령 정상에 함양의 랜드마크로 불러도 될 만한 '지리산 제일문'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역시 발품을 팔아 돌아봤다.
흔히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고 했건만 예외도 있다. 함양을 그 예외에 넣어도 될 성싶다.
#무오사화의 밀미 "학사루"
논개의 묘소를 찾아 가슴 저미도록 안타까운 사연도 들어봤다. 최근에는 지리산으로 가는 오도령 정상에 함양의 랜드마크로 불러도 될 만한 '지리산 제일문'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역시 발품을 팔아 돌아봤다.
흔히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고 했건만 예외도 있다. 함양을 그 예외에 넣어도 될 성싶다.
#무오사화의 밀미 "학사루"
군청 맞은편의 학사루를 보고 간다. 무오사화의 빌미가 됐던 역사의 현장이다.
유자광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 이곳에 올라 시를 지어 시판을 만들어 걸었다.
유자광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 이곳에 올라 시를 지어 시판을 만들어 걸었다.
이후 함양군수로 부임한 김종직이 학사루에 오르니 평소 소인배로 여기던 유자광의 시판이 보여 그것을 떼내게 했다. 이 사실을 안 유자광이 후에 무오사화를 일으켜 그의 문도들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당시 함양은 고을을 가로지르던 위천의 잦은 범람으로 홍수가 잦았다.
최치원은 수해 예방을 위해 둑을 쌓아 물줄기를 돌리고 강둑에 인근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의 활엽수를 옮겨다 인공숲을 조성했다.
원래 이름은 대관림. 이후 대홍수로 둑의 중간이 파괴돼 상림과 하림으로 나눠졌고,
원래 이름은 대관림. 이후 대홍수로 둑의 중간이 파괴돼 상림과 하림으로 나눠졌고,
하림엔 마을이 들어서 지금은 숲이 거의 사라졌다. 대관림은 원래 길이 5㎞에 6만여 평이었으나
지금은 1.6㎞, 3만6000평 정도. 폭은 80~200m. 뒷짐 지고 천천히 걸으면 왕복 1시간쯤 걸린다.
지금 상림은 낙엽천국. 바람이라도 불면 발목까지 덮는 낙엽길에 낙엽비가 흩날린다.
지금 상림은 낙엽천국. 바람이라도 불면 발목까지 덮는 낙엽길에 낙엽비가 흩날린다.
그야말로 낙엽천국이다. 120여 종 2만여 그루가 쌓아놓은 낙엽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곳에 오면 봄철 화려한 꽃비보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의 감동이 더 한층 진하다는 사실을
이곳에 오면 봄철 화려한 꽃비보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의 감동이 더 한층 진하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절개의 상징, 논개 발자취를 찾아서
#절개의 상징, 논개 발자취를 찾아서
인접한 서쪽의 장수 장계면 주촌마을에는 논개의 생가가 있다.
그 사이를 백두대간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임진왜란 때 논개의 부군인 최경회는 경상우병사로 진주성 싸움에 나서 패하자
남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평범한 아낙이던 논개는 이후 기생이 되어,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진주성 함락 후 장수지역 의병들은
논개와 그의 남편 최경회의 시신을 수습, 고향으로 옮겨 장례지낼 것을 주 씨 문중에 제의했지만
기생으로 바뀐 딸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할 수 없이 시신을 육십령을 넘어 지금의 함양 서상면 방지마을에 남편 묘와 함께 모셨다.
이 사연은 장수지역 의병의 후손들에 의해 전설처럼 전해오다 지난 1976년 장수와 함양의 향토사학자
등의 고증에 의해 지금의 묘지가 논개와 최경회의 것으로 입증됐다.
재밌는 점은 서상면 방지마을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논개 묘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양지바른 언덕에 위치한 두 묘지 중 아래쪽이 논개, 위쪽이 최경회 장군 묘다.
양지바른 언덕에 위치한 두 묘지 중 아래쪽이 논개, 위쪽이 최경회 장군 묘다.
장수 주촌마을에는 현재 논개 생가가 복원돼 있다.
세월이 흘러흘러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육십령 고갯길에 이어
세월이 흘러흘러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육십령 고갯길에 이어
최근에는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생겨 육십령터널를 통과하면 곧바로 장수로 이어진다.
함양에 왔다면 지리산을 안보고 갈 수 없지 않은가. 오도령으로 향한다.
남원 가는 24번 국도로 달리다 1023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지리산 칠선 백무 오도령"이라 적힌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예부터 하늘과 맞닿은 고개라는 뜻의 "천령"의 땅 함양의 옛 사람들이 장터목으로
물물교환을 위해 괴나리봇짐을 지고 넘었던 길이다.
속리산 말티고개를 연상시키는 갈지자형 지안재를 넘어 오도령에 닿으면
지난 1일 준공식을 가진 "지리산 제일문"이 길손들을 기다린다.
새로운 명물로 자리잡을 듯하다. 신재효가 정리한 가루지기전에 따르면 오도령 인근의 산신각은
변강쇠와 옹녀가 세상을 떠돌다 정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도령에서 마천쪽으로 가다 보면 지리산 조망공원을 만난다. 전망대 구실을 하는 지득정(智得亭)에
오도령에서 마천쪽으로 가다 보면 지리산 조망공원을 만난다. 전망대 구실을 하는 지득정(智得亭)에
올라서면 총 길이 25.5㎞의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인근에는 지리산 전망대가 한 곳 더 있다. 천년고찰 금대암이다.
인근에는 지리산 전망대가 한 곳 더 있다. 천년고찰 금대암이다.
1023번 지방도를 계속 가다 보면 이정표가 서 있다. 물론 차로 갈 수 있다.
지리산 조망공원과 마찬가지로 주능선에 일일이 봉우리 이름을 표기한 조망안내판이 서 있다.
칠선계곡 입구의 서암정사도 빠뜨리지 말자.
칠선계곡 입구의 서암정사도 빠뜨리지 말자.
한국 현대불교미술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석굴법당 때문이다.
석굴법당인 극락전에는 바닥을 제외한 벽과 천장에 아미타여래불과 지장보살이 조각돼 있다.
11년간 불국토를 꿈꾸며 일군 주지 원응스님과 한 장인의 불력이 이룬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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