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한국을 찾은 <대지>의 작가 펄 벅은 우리의 지게에서 '한국인의 정신'을 읽어냈다.
지게에 볏단을 진 한 농부가 볏단을 가득 실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보며 무릎을 쳤다.
"미국이라면 지게의 짐도 소달구지에 싣고, 농부도 달구지에 올라탔을 것이다.
소의 짐까지 덜어주려는 농부의 저 마음이 바로 내가 찾는 한국인의 정신이다."
지리산의 많은 골짜기들 가운데 걸어가기에 좋기로는 대원사 계곡이 으뜸이다.
그 중에서도 공원 매표소~대원사~가랑잎학교의 10리 길은 환상적이다. 자연경관이 꿈결같이 빼어나다. '한국의 명수 100곳'의 하나인 청정계류와 화강암반에 둘러싸인 소와 담,
조선 소나무의 그림 같은 운치 등 그 모두는 시요, 그림이요, 음악이요, 춤인 것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길을 기분 좋게 걸어갈 수가 없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많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청정한 공기, 맑은 물소리, 짙은 솔향기마저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과 소음들로 하여 진저리를 친다.
비좁은 도로, 왕복 1차선에 보행로마저 없다.
매연과 소음은 두고라도 자동차에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고 시종 가슴을 졸이게 된다.
걸어가는 사람 사이로 자동차가 질주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연 탐승의 여유를 잃고,
매연과 소음으로 스트레스만 받게 된다. 지게에 구순 노부를 태우고 금강산 탐승에 나선 아들,
지게를 진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걸어가는 이치를 생각해보자.
볏단 아닌 배낭을 지게 아닌 자동차에 싣고 가는 것에서 '한국인의 정신'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자동차를 타고 대원사 계곡을 100번을 오르내리면 무엇하나?
이 계곡이 만들어내는 시와 그림과 음악과 춤은 걸어가지 않으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국립공원구역, 자연탐승의 인기가 높은 곳에 자동차 통행을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허용해도
되는 것일까?
어제 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닌 데도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어째서 수수방관하기만 할까?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 요세미티는 3061㎢의 광대한 면적이지만 자동차도로는 몇 개밖에 없고,
셔틀버스는 소음과 매연이 없는 '무공해 차량'이다. 공원 구석구석은 자전거로 돌아보게 한다.
대원사 계곡의 차량 통행도 제한돼야 마땅하다.
무공해 셔틀버스 운행과 자전거 탑승, 걸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자연탐승로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제안과 주장이 제기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하지만 아무리 짖어보았자 쇠귀에 경 읽기다.
여론이야 어떠하든 마이동풍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깊은 불신은 부동산과 교육정책 탓만이 아니다. 국립공원의 차량 통행 문제 하나마저 여론을 일방적으로 묵살하는 관료적 타성이 지배한다.
이런 것들이 쌓여 국민의 울화통을 터뜨리게 만든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시민들에게도 문제가 없지 않다.
그들에게 노부를 지게에 태우고 금강산 관광의 효심을 권유할 수는 없다.
지게를 지고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한국인의 정신'을 강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편의와 편리 때문에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은 알아야 한다.
자동차가 아닌, 걸어가는 진정한 즐거움도 깨우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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