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통신 이동중계기를 설치하면 뭐 합니까. 긴급할 때 사용할 수도 없는데…."
지난 25일 오후 8시께 서울에서 친구 세 명과 함께 지리산 등산에 나섰던 최성수(32) 씨는 "구조 요청을 위해 등산로에 설치된 이동중계기 긴급 버튼을 몇 번이나 누르고 휴대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고 국립공원관리공단에 항의했다.
최 씨 일행은 이날 지리산 천왕봉, 장터목, 칼바위를 거처 중산리로 하산하기로 하고 등산에 나섰다. 그러나 산행이 지체되는 바람에 산 속에 어둠이 찾아들어 칼바위 1㎞ 지점 전부터는 더 이상 하산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19에 구조를 요청하기로 하고 장터목~칼바위 구간에 설치된 이동중계기를 작동, 휴대전화로 연결을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다행히 뒤따라온 다른 등산객들의 도움으로 어둠 속에 고립돼 있던 최 씨 일행은 구조가 됐지만 하마터면 인명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휴대전화 통화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지리산 등산로에 설치한 긴급통신 이동중계기가 방전된 채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는 지리산에서 긴급상황 발생시 원활한 구조를 위해 휴대전화 통화가 불가능한 순두류~법계사, 거림~세석산장, 칼바위~장터목 등 등산로 14개소에 이동중계기를 설치한 데 이어 올해안으로 67개소에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미 설치돼 있는 14대의 이동중계기 대부분이 한달여 만에 충전지가 방전돼 쓸모없이 방치되고 있다. 이동중계기가 태양열로 충전되므로 설치 당시 나무 그늘을 피해 설치해야 하는데도 통신회사가 이를 감안하지 않고 나무 숲 아래에 설치했기 때문이다.
지리산 사무소 측은 "최근 등산객들의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이동통신 회사 측에 다른 곳으로 이전해 설치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했다.